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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교회 '전주서문교회'1892년 미남장로회 선교부 7명 한국 파송...전주 완산 초가집 구입 '복음 시작'
김석호 담임목사

전주서문교회가 호남 최초로 미국 선교사를 통해 1893년 문열 연다.

미남장로회 선교부는 1892년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과 여성 매티, 볼링, 레이번, 데이비스 7명을 처음으로 한국 선교사로 파송했고, 이 선교사들은 1893년 레이놀즈 선교사의 서기 겸 어학선생인 정해원을 서울로부터 전주 완산 은송리에 파송하여 초가집을 구입했다.

그 집은 뒤편에 언덕과 앞쪽에는 벼랑으로 되어 있으나 넓은 마당이 있고 행랑채가 딸린 초가집이며 52냥(26$)에 구입하고 6월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니 호남 최초의 교회가 되고, 1897년 7월 17일 레이놀즈 목사의 집례로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세례를 받아 한국인 세례 교인이 있는 교회로 성립됐다.

이어 레이놀즈(이눌서)목사는 전주서문밖교회 담임과 전주 10여 처 교회의 교역까지 맡으면서 1905년 1월부터 본격적인 번역에 몰두하여 마침내 1910년 4월 2일 오후 2시, 만 5년 4개월 16일 만에 언더우드 목사가 번역한 예레미야서를 제외한 구약전서 번역을 완성했다. 이 구약전서는 1911년 일본 요코하마 복음출판사에서 8,000부가 인쇄되었고, 1년 사이에 매진됐다.그 집은 뒤편에 언덕과 앞쪽에는 벼랑으로 되어 있으나 넓은 마당이 있고 행랑채가 딸린 초가집이며 52냥(26$)에 구입하고 6월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니 호남 최초의 교회가 되고, 1897년 7월 17일 레이놀즈 목사의 집례로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세례를 받아 한국인 세례 교인이 있는 교회로 성립됐다.

1893년 초가 예배당

그 후, 김인전 목사는 1914년 10월 16일 전주로 부임했고, 구역권찰부터 매월 성경강론회를 열고, 전교인을 대상으로 사경회와 단기성경학원을 열어 성경과 애국사상을 철저하게 교육했다.

또, 배은희 목사는 1921년 7월 부임했으며, 어린이교육과 전도운동을 목표로 하여 9월 초 유치원을 열었다. 이는 호남지방 최초의 유치원이 됐고, 배은희 목사는 전주여자야학회를 열어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경은 물론 한글과 초보적인 학과도 가르쳤다.

한편 전주서문교회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7년간 옥중생활로 고문 받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됐으며, 여수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는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전주에서는 오직 배은희 목사와 김가전 목사, 그리고 최양서 집사가 신사참배 반대의 뜻을 대중 앞에서 밝혔으나 마침내 굴복하고 말았다. 신사참배 거부로 인하여 신흥과 기전 두 학교가 강제로 폐교되었다. 서문밖교회는 1937년 9월 15일 밤 송별예배를 드렸다. 1938년 6월 전북노회의 결의와 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로 한국교회와 미국남장로회 선교회와 47년간의 관계는 일단 끝나게 됐다.

현재 교회

전주서문교회를 중심으로 예수병원과 신흥학교, 기전학교를 설립하여 전주지역 근대 의료를 보급하고, 기독교 진리와 민족정신, 애국사상, 국제정세를 가르쳐 시대에 필요한 인재로 길러냈으며, 1919년 전주 3.1운동을 총 지휘했던 김인전 목사와 항일민족운동 및 교육과 농촌부흥운동에 힘쓴 배은희 목사가 시무하였던 교회이고, “말씀과 기도로 온전하여지는 성도를 지향하며 예배와 교육, 국내외 복음전파와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양성 사역, 나라와 민족을 품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며 "주의 은혜와 평강이 모든 분들께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고 김석호 담임목사는 전했디. 

전북/이승재 기자  esjab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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