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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환기자] '나라를 지키는 금줄이 되기를...'
임승환 본부장/YBC연합방송 경북취재본부

같은 헝겊 조각이라도 그냥 마구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모으면 예술작품이 된다. 새끼줄에 헝겊 조각을 매달아 동네 앞 고목나무에 걸쳐 놓으면 동네를 지키는 훌륭한 당산목(堂山木)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치이다.

남산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 벽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달아놓은 수많은 자물쇠가 있다. 그런 자물쇠도 아무 곳에나 마구 쌓아놓으면 고철 뭉치에 불과하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 그것도 가장 전망 좋은 곳에 모아서 달아놓으면 훌륭한 설치미술작품이 되고 관광명품이 된다.

글자도 마구 갈겨 써놓으면 알아볼 수 없는 글자 쓰레기가 되지만 좋은 문장으로 연결해 놓으면 멋진 시가 되고 감동적인 격문이 된다. 무당(巫堂)들이 굿을 할 때도 다채로운 색깔의 헝겊이 달린 긴 대나무 막대기를 흔들며 춤을 춘다. 무당들이 사용하는 그런 막대기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라 신을 부르고 신의 말을 전하는 신령스런 막대기이다.

무신(巫神)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무당을 통해서 주술적(呪術的) 효력을 얻어 자신들의 소망을 달성시키고자 한다. 즉 우환이나 재앙이 있을 때 무당을 통해 그 불행의 진원지를 찾고 그 진원을 물리치거나 없앨 방법에 대한 신령의 처방을 받고자 한다. 

따라서 무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당은 한 사람의 행복 안내자인 동시에 불행의 진원을 없애주는 퇴마사(退魔師)이며 신의 소리를 전해주는 영매사(靈媒師)이다. 우리 역사만 보아도 그런 무당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고구려에는 무(巫), 사무(師巫), 신무(神巫) 등이 있었고 그 명칭도 여러 가지였다.

옛날에는 무당처럼 신과 통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일자(日者), 일관(日官), 술사(術士), 술자(術者), 술인(術人), 승하(僧下), 복인(卜人), 복자(卜者)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또 재인(才人), 창우(倡優), 광대(廣大) 등도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무당들은 일반인들이 불러낼 수 없는 신령들을 어떻게 불러낼까? 바로 찢어진 헝겊으로 휘황찬란한 깃발을 만들어 흔드는 것이다. 

헝겊은 아무 데도 쓸모없는 한낱 쓰레기 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무당들의 손에 들어가면 이렇게 신령을 부르는 초혼(招魂)의 도구가 된다. 어부들도 풍어가 되면 배에 오색천을 길게 달아 나부끼게 함으로써 용왕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전한다.

오색천으로 만든 무당들의 초혼(招魂) 깃대와 비슷한 개념의 기원(祈願) 줄인 금줄(禁绳: 금승)은 부정(不淨)한 것이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대문이나 마을 어귀, 장독대, 당집, 당나무 등에 치는 특별한 새끼줄로서 아기의 탄생 혹은 송아지의 탄생처럼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했을 때와 동제(洞祭), 기우제(祈雨祭), 성주신(城主神)를 봉안할 때 사용하는 전통적인 퇴마용 줄이다.

그런 금줄은 헝겊이나 종이에 글자, 그림, 부호 등을 잘 보이도록 그리거나 써서 꿰어놓은 줄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나 군대, 여러 단체나 시설, 혹은 선박 등의 표장(標章)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장방형의 천으로 한쪽을 깃대에 매달아 높이 들어 올리거나 때로는 벽면 같은 곳에 걸쳐 놓기도 하는 휘장(徽章)이다. 그런 휘장과 깃대는 본래 종교의식에서 위용을 갖추거나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신호, 장식, 축제, 행렬 등에서 광범하게 쓰여지고 있다.

군대가 진격하여 고지를 점령하면 맨 먼저 자기편의 기를 꽂는다. 그러면 한쪽은 사기가 충천하고 다른 쪽은 풀이 죽는다. 6·25전쟁 때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국군이 맨 먼저 중앙청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는 광경을 보고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런 기(旗)는 정복을 상징한다. 

탐험가나 등산가들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면 거기에 자기 나라 국기를 꽂아 정복을 표시한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인이 성조기를 꽂고 돌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旗)는 신호로 쓰이기도 한다. 전쟁에서 백기는 평화 또는 항복을 뜻하고, 철도에서 푸른 기를 흔들면 기차가 진행하고 붉은 기를 흔들면 정지한다. 적십자 기는 의료기관을 상징하므로 전쟁터에서도 그 표지가 있는 곳은 공격하지 않는다.

지금 참한대가 마지막 독회(讀會)과정을 거치고 있는 “국민헌장” 제정도 마찬가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흩어진 생각은 쓸모없는 헝겊 조각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헝겊조각을 매달아 당산목에 두르는 금줄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집약하면 민족혼을 살리고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리는 국민헌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찢어진 헝겊 조각처럼 흩날리는 민초들의 생각과 마음을 한데 모아 '국민헌장'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집필진들의 노력이 민족혼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국가적, 국민적 금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임승환기자  press35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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