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기자수첩
[임승환기자] 극히 정상적인 사람
임승환 본부장/경북취재본부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유진 로네스코(Eugene Lonesco)는 “깨달음을 주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라는 말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인슈타인도 “질문은 정답보다 중요하다.”고 했고, 스티브 잡스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뿐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세상을 개척해 나갔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런 질문은 긍정적 결과를 찾아내기 위한 질문이다. A라는 방법으로 안 될 경우 “왜 안되는 걸까?”라는 질문은 B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질문이고, 우측방향으로 가서 목표물을 찾지 못할 때 하는 “뭐가 잘못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좌측방향으로 가는 생각도 해보기 위한 질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어떤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 “만일 이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이 일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비슷한 시도를 해서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은가?” 등등의 부정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계획한 일이라면 그런 부정적 결과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각자의 최선은 하늘이 준 유일한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불자들은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으로부터 수행을 시작한다고 한다. “너는 누구냐? → 나는 사람이다 → 사람은 어떤 존재이냐? →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 생각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 참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 ???”는 식으로 끝없이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계속해 가다보면 어느 순간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듯 깨달음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불교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한다.

돈오돈수는 불교에서 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단박에 깨우쳐 궁극적이고 완전한 지혜를 얻는 경지인 구경각(究竟覺)에 이름으로써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선종(禪宗)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가르침 속에 언급되어 있고 한국 현대불교에 큰 자취를 남긴 성철(性徹) 스님이 옹호했던 수행법이다.

이와는 반대로 고려시대 지눌(知訥)선사 이래 한국불교의 주류로 자리 잡아 온 수행법인 돈오점수(頓悟頓修)는 단박에 깨친다는 점에서는 돈오돈수와 같지만 깨치고 나서도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깨침의 경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돈오돈수론자들은 깨치고 나서도 더 수행할 것이 있다는 말은 진정으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고, 돈오점수론자들은 고인물은 반드시 썩듯이 계속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금강석처럼 맑고 단단한 깨우침이라 하더라도 변질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 일반인들이 이런 선지자들의 수행론을 놓고 언급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초등학생이 박사의 논문을 평가하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깨달음이든 학문적 결론이든 인간의 이치는 어떤 경우에도 하늘의 이치보다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늘의 천기를 받고 태어난 인간이 하늘의 이치를 넘어설 수 없을 것임은 누가 들어도 당연한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하늘은 순간도 쉼 없이 변하는 하늘이다. 오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았다가도 내일은 여름 장마철처럼 먹구름이 뒤덮이면서 폭우가 쏟아지곤 한다. 그런 변화는 우주가 생긴 이래 한 번도 멈춘 일이 없다. 이런 하늘의 이치를 두고 볼 때 인간의 삶은 변하는 삶이요, 바뀌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렇게 변하고 바뀌는 삶은 희망의 삶이기도 하다. 만일 변하고 바뀌지 않는다면 현재의 불행이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런 삶은 죽음보다 못한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했고 손자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배움의 연속, 깨달음의 연속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천당에 가면 영원히 천당에서 살고 한 번 지옥에 가면 영원히 지옥에서 산다는 신앙인들의 주장은 이런 천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천당과 지옥 외에는 더 이상 하늘나라가 없다는 주장도 “영원히 변한다”는 하늘의 이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도대체 우주천지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선거제도는 소수의 천재보다 다수의 국민들이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제도이다. 어떤 천재보다 더 현명한 다수의 국민들이 보는 세상은 절망도 있고 희망도 있는 세상, 그래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세상이다. “천국처럼 기쁨뿐인 세상, 지옥처럼 슬픔뿐인 세상”은 오직 인간의 생각 속에 있는 가상세계(假想世界)일 뿐이다. 희로애락이 엇갈리며 변해가는 세상이야말로 거짓 없는 현실적 인간 세상임을 모를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울고 웃는 님이여, 행운 혹은 불운이 겹쳐 왔다고 좋아하고 슬퍼하는 님이여, 그대야말로 변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임승환기자  press3588@naver.com

<저작권자 © YBC연합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승환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