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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낙안읍성 '옛 모습 그대로'
순천 낙안읍성 남문과 성안의 마을  사진 (제공=순천시)
순천 낙안 읍성 성안의 마을 사진(제공=순천시)
순천 낙안읍성 안의 마을 사진 (제공=순천시)

[YBC연합방송=김재호 기자]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낙안읍성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성으로 종묘와 완궁이 있는 도성과는 구별이 된다.

특히 낙안읍성은 낙안고을의 진산인 금전산을 배경으로 다른 읍성 평산성과 달리 완전히 평야에 쌓은 평지 읍성이다.

낙안읍성은 고려 후기부터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節制使)인 김빈길(金贇吉)이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이후 1424년(세종 6)에 토성을 석축 성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규모와 같이 크고 넓게 쌓아졌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순천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폐허가 된 읍성은 1628년(인조 6) 무렵에 낙안군수로 있던 임경업에 의해 복구되었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성벽의 길이 1,406m, 높이 3~5m이며, 면적은 223,108㎡이다. 부속 시설물로는 성문 3개, 옹성 3개, 치 4개, 해자와 객사 및 동헌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또 이곳 특징 중 하나는 깊은 우물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전통마을 중 풍수지리에서 행주형으로 성내에 깊은 우물 파는 것을 금했는데, 배는 물에 떠다니므로 언제나 가라앉을 위험이 있어 우물을 파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낙안읍성을 찾는 것을 배를 타는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낙안읍성 사람들은 다행히 마을 중앙에 1m 정도의 낮은 천연샘이 있어 식수 공급에 문제가 없었다.

풍수에서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은 금지했지만 천연우물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배 안에 고인 물로 인식하고 배안에 들어온 물은 퍼내야 안전하므로 천연물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우물은 지금도 남내리 골목안에 있는 우물로 큰샘, 미인샘이라고 하며 원님이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져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떠가는 명수다.

특히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읍성은 원형 모습이 잘 보존된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한 곳이다.

/김재호기자  kh7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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